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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나물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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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녹두길음이라는 표기는 1808년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나온다. 즉 조선시대 문헌에서 한글로 '숙주나물'이라고 부른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기록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숙주나물'이라고 언제부터 불렸는지는 정확한 추정이 어렵다.


숙주나물과 신숙주를 연관지은 최초의 한글 기록은 1924년 이용기(李用基)가 편찬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8]에서 나타나는데, 원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숙주라하는것은 조선의 세조때 신숙주(申叔舟)가 여섯신하를 고변(告變)하야 죽인고로 미워하야 이 나물을숙주라한것이니 이 나물을 만두소를너을적에 짓익여늣는고로 신숙주를 이나물익이듯하자하야서 숙주라하얏나니 이사람이나라를위하야 그리하였다하나 엇지 사람을죽이고 영화를구할가보냐 성인군자는 결단코아니하나니라[현대어역]

이용기 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서울, 라이스트리, 2019, p.145


사육신을 고변한 당사자는 김질이라는 인물이었고 신숙주를 비난하는 소설이 일제강점기에 널리 유행했던 점을 고려하면 숙주나물이라는 단어가 신숙주 당대의 백성들이 신숙주를 비하하는 의미에서 쓴 데서 유래한 명칭이라고 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숙주나물의 어원이 정말로 신숙주를 비하하는 의미였다고 해도 기록상으로는 아무리 빨라도 19세기 이후에나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두문불출[10]이나 행주치마가 사실 두문동이나 행주대첩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사실이야 몰라도, 신숙주의 후손들인 고령 신씨와 계유정난때 도움을 받은 가문들은 숙주나물을 녹두나물이라 부르고, 며느리나 배우자에게 녹두나물이라고 부르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이 시장에 가서 녹두나물을 달라고 해서 가게에서 못 알아듣었다거나, 집안에서 '숙주나물'이라고 칭하다 집안 어르신들에게 혼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령 신씨 집안에서는 제사상에 숙주나물을 올리지 않는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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