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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률풍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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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우맨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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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률풍 - 텔레폰을 한자어로 옮긴것


한자어 그대로 뜻을 헤아리면 ‘덕을 펼치는 바람’이에요. 전화를 뜻하는 영어 단어 ‘텔레폰’을 비슷한 발음이 나는 한자어로 옮긴 거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 전화기는 1896년 고종 때에요. 덕률풍 덕분에 사형을 면한 ‘김구’의 일화가 유명하지요. 


조선 최고의 통신원이 되고 싶은 강식이는 덕률풍 만드는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강식의 아버지는 덕률풍이 잘 개통될 수 있도록 전신대를 설치하는 일을 하시는데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는 강식이는 아버지가 세운 전신대에 강식이만 알아볼 수 있는 문구를 새깁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이 문구를 새길 때만 해도 강식이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전신대로 인해 어떤 일이 펼쳐질지요. 


강식이가 살던 시절은 일제 강점이 시작되려던 때였어요. 강식이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워 군용 전신권을 독점하려던 일본의 야욕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 했어요. 


아버지의 결백을 밝히는 과정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이웃의 배신, 탐욕적인 관리들을 보며 절망하기도 했지만 강식이 그렇게 꿈꿨던 통신 기술로 사실의 전모를 밝혀 냅니다. 


새로운 통신 기술이 도입되면서 고전적인 통신 방법인 봉수군들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면서도 안타까운 사실이었어요. 기술 발달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기존의 일자리를 뺏기도 하지요. 특히나 우리나라 근대화는 외세에 의한 것이어서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로 이어질 수 없어 반발이 더 심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일제의 침탈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 것이라 강식이처럼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열정적이던 사람들은 일본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느끼는 분한 감정이 더 컸을 거라 짐작됩니다. 


주말 산책길에 만난 수원 화성 봉수대에요. 덕률풍과 같은 전신 기술 이전에는 파발과 함께 오랜 시간 전국적인 통신 수단이 되어주었던 시설이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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